초사이언인: 에네르기파로는 프리저를 이길 수 없어
1.
“감사한 2024년”
2024년에는 여러 방면으로 에너지를 쏟아부었었고, 운이 좋게도 “Input → Output”이 제대로 되었습니다.
행복한 사람과 결혼을 했으며, 투자 방법론도 더 명확해졌네요. 진심으로 위하는 투자 친구들과 만나 서로 좋은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회사에서는 갑작스레 투자와 아예 상관없는 업무를 맡아 스트레스를 받긴 했지만 어떻게든 잘 마무리 했습니다. 하루하루를 돌아보니, 이 모든 일이 2024년에 벌어졌다는 게 신기하기만 합니다.
2.
“뒤틀려버린 나”
올 한 해를 마무리하며, 스스로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던 작은 일화를 나눠봅니다.
크리스마스 저녁 스크린 골프를 갔는데, 드라이버가 제대로 맞지 않아 공이 고작 17m밖에 안 날아간 적이 있습니다. 순간, 자동으로 공을 옮겨주는 기계에서 나는 큰 소음을 마음속으로 탓했습니다. 그 뒤의 샷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고, 좋은 스윙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두어 번 더 스윙한 뒤, 문득 내 감정이 심하게 꼬여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내가 못 쳤으면서 왜 기계를 탓했을까?’ 만약 친동생이 이런 태도를 보였다면, 크게 나무랐을 것이 뻔한데요. 내 에너지는 잘못된 방향으로 분출되고 있었습니다.
투자의 의사결정을 하는 주체는 나 자신이기에, 좋은 기업이나 방법론을 알더라도 내 감정이 뒤틀려있으면 큰 손실로 이어지기 쉽지 않을까요. 올해는 기업 분석 범위를 넓히고, 투자 방식에 대해 깊이 고민할 수 있었던 축복같은 시간이었습니다만, 내년에는 나 자신을 더 잘 컨트롤해 좋은 남편이자 좋은 투자자가 되고 싶습니다.
3.
“초사이언 필요조건; 에너지, 컨트롤”
드래곤볼 속 손오공은 에네르기파, 태양권, 원기옥 등을 배워가며 쉼 없이 강해집니다. 그러다 베지터를 만나고, 절친인 크리링을 잃는 큰 분노를 경험하는데요. 이 감정을 제대로 컨트롤함으로써(손오반에게 초사이언 비법을 알려주는 과정 참고) 마침내 초사이언으로 변신, 베지터를 쓰러뜨립니다. 비기를 익히는 건 멋진 일이지만,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결국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잘’ 다루는 힘이 필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저도 초사이언 변신 직전, 높은 에너지를 어떻게 제어해야 할지 배워야 하는 단계에 있는 게 아닐까요. 그동안은 에너지를 더 많은 투자 공부나 운동으로 풀곤 했지만, 결국 내 마음 상태를 컨트롤하는 힘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느낍니다.
만약 이 단계를 잘 넘는다면, 저 역시 초사이언이 되어 ‘시간의 방’ 같은 압축된 세계에서도 효율적으로 투자 연구를 하고, 가족에게 더 헌신하며, 동료들에게도 좋은 기회를 줄 수 있을 듯 합니다.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알았으니, 그간 배운 것을 곱씹으며 더욱 정진해보려 합니다.
4.
“짙어진 투자 방법론”
올해 중반까지는 ‘변화’에 집중했습니다. 기업이나 외부 변수가 변하는데도 주가가 움직이지 않으면, 투자하기 스윗 스팟이었습니다. 여러 기업을 살피며 변화가 일어나는 타이밍을 주시했는데, 같은 변화에도 어떤 기업은 주가가 훨씬 강력하고 지속 가능한 기업이 존재한다는 걸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돋보기를 들고 살펴보니, 그런 기업들의 ‘선’이 남달리 짙었습니다. “왜 좋은가?” “얼마나 좋은가?”라는 질문은 그 선의 두께를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 지 였는데요. 이 질문들을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비자와 경영자의 관점에서 생각하게 됐고, 더욱이 시장에서 ‘선의 두께’를 재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점이 투자에 알파가 되리라는 직관적인 확신이 들었습니다. 서툴지만, 내년에도 이 방법론을 꾸준히 다듬어볼 생각입니다.
무협지인 『화산귀환』이나 『텍사스 홀덤』도 의외로 좋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소설 속 청명이 말했듯, 가장 강한 것은 정파와 사파가 적절히 뒤섞인 모습입니다. 투자에 이를 적용해 차트와 사람들의 생각을 융합해 시장 심리를 들여다보니, 손익비가 더욱 명확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도박묵시록 카이지』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AA가 KK를 이길 확률은 80%지만, 여전히 20% 확률로 질 수 있습니다. 20%의 질 확률은 늘 두렵지만, 때로는 『카이지』처럼 눈과 귀를 걸 각오로 승부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 만화로부터 많은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와 함께 올해는 빌 애크먼의 ‘예측 가능성’과 더불어 매도 시점에도 많은 고민을 쏟았는데요. 연간 매도를 돌아보면, (1) 밸류에이션이 과도해졌을 때 기계적으로 매도, (2) 성장 기울기가 점차 낮아질 것 같으면 매도, (3) 투자 포인트 자체가 달라졌을 때 매도하는 세 가지 유형이 존재하였습니다. 올해 시장이 좋았던 만큼, 내년에는 매도 시점이 더욱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다만 변곡점에 놓인 기업을 좀 더 깊이 살피지 못하고 먼저 팔아버린 실수도 있었는데, 이 부분은 상반기 결산에서 자세히 되짚어봤었습니다.
5.
“심법 수련”
‘초사이언 되기’ 프로젝트의 핵심입니다. 제 자신의 감정의 흐름을 인지하고, 그것을 올바르게 컨트롤하는 법을 익히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서 “내 감정이 지금 어떤 상태지?”라는 질문을 자주 던지며 스스로를 점검할 생각입니다.
체력도 중요합니다.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 에너지를 충분히 소진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불필요한 부분은 ‘안성재’처럼 덜어내어 꼭 필요한 곳에만 집중하고자 합니다.
그 뒤에는 ‘바스키아’처럼 폭발적인 속도로 달려보고 싶습니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투자 아이디어 검토를 미루는 습관을 버리려고 하는데,아래의 바스키아 영상은 투자자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 심법 훈련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는,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자 든든한 동반자인 아내에게 물어보며 확인할 생각입니다. 제 에너지와 마음가짐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은 장치 아닐까 싶네요.
6.
“동료와 함께”
그동안은 친구의 등에 든든히 버팀목이 되어줄 만한 베이스가 부족해, 제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올해 투자 방법론이 더 깊어졌고, 마음가짐도 한층 정돈되었으니, 내년에는 꼭 훌륭한 동료로서 물심양면 돕고 싶습니다. 올 한 해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동료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못한 점입니다. 좋은 종목은 더 사라고 부추기고, 아닌 것은 제대로 말려야 했는데, 그 기여가 없었던 것 같네요.
동료들이 가져오는 기업들이 설령 내게 흥미가 없더라도,(스스로 분석할 때는 소비재나 변화의 직전인 기업에만 흥미가 있습니다.) 함께 주식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만큼은 무엇보다 즐거우니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동료들의 투자 아이디어를 더 참신하고 깔끔하게 다듬어주고, 나 역시 훌륭한 투자 아이디어로 보답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함께 성장하는, 진짜 동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입니다.
7.
“리스크 관리”
욕심이 있기에 우리는 투자를 합니다. 하지만 과도한 욕심으로 기업이 성장하는 속도나 혹은 내 자신이 성장한 수준을 넘어서는 계좌를 바라는 욕심은 늘 경계해야 한다고 다시 한 번 마음을 먹어봅니다.
그리고 투자에 모든 걸 걸었다고 해서, 당장 리스크를 한꺼번에 짊어질 필요는 없습니다. ‘최적의 타이밍’을 기다리면 되는 일입니다. 문제는 ‘스킨 인 더 게임’ 수준이 높아질수록, 나도 모르게 서둘러 승부를 보려는 충동이 생기지 않을까라는 생각입니다. 한 곳만 바라보고 있으니 구조적으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을 것 같지만, 성공한 사람들 생각하면 다 신중했던 것 같습니다.
8.
“2025년 투자 계획”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하지 않은 투자 계획입니다. 그때 그때 생각이 바뀔 수 있으니까요.
AI 분야 집중
올해는 ‘작년과 동일하게’ AI(B2C, B2B) 분야에서 더 날카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하고자 합니다. ‘초개인화’와 ‘초효율화’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퀄리티 스타일을 지키면서도 일정 수준의 회전율을 유지해볼 생각입니다. 작년에는 비슷한 테마로 ‘물 반, 고기 반’이었는데 지금은 아닌 것 같네요.
국내 시장: 특산품 기업 + 중소형 신규 상장주
국내에서는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특산품 관련 기업뿐 아니라, 중소형 신규 상장주 중 ‘숨은 진주’를 찾아보려 합니다. 국장이 정상적인 양극화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중소형주에서는 오히려 큰 미스매칭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라는 가설을 세워봤습니다. 우리나라는 위기에 강하고, 인재는 많습니다. 실력 있는 팀들이 곳곳에서 혁신을 일으킬 것이고 이를 간과하면 안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국내 경제에 줄곧 회의적이지만, 지금의 수준은 과하다고 생각합니다.
해외 시장: 신중하고 보수적으로
해외에서도 이런 테마(‘AI와 혁신 기업’을 중심으로 한 투자의 기회)를 이어가되, 시장이 불안한 만큼 밸류에이션에도 더욱 신경 쓸 계획입니다. 무리한 베팅보다는 신중하고 보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중이네요.
이 모든 게 다소 과해 보일 수 있긴 하지만, 2025년에는 초사이언이 될 거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올 한 해 저를 도와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년에는 제가 더 많이 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4년 작성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