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상반기. 국내와 해외 모두 운의 도움으로 양호한 수익률을 거둘 수 있었다. 2분기부터 마음 속 키워드는 유연함과 불확실성이었고, 이러한 개념을 인지하고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 고민한 것이 무엇보다 이번 상반기의 큰 수확이었다.
유연함과 불확실성
투자자에게 ‘유연한 사고’는 모순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해왔다. 휩쓸리는 투자자가 되지 않으려면 줏대 혹은 원칙이라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유연함과 거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올곧은 대나무를 구부리거나 휠 수는 없지 않은가. 어릴 적 떠드는 사람에 적히지 않코자 했던 과거 나의 성정을 되돌아보면, 난 유연함보다는 올곧음 혹은 경직성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텍사스 홀덤’의 마지막 장면, ‘화산귀환’의 정파이면서 가장 사파스러운 검, 한국가스공사, 삼양식품 등의 투자 사례를 복기하면서, 유연함은 올곧음과 대척점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두려움을 이겨내어 행동하는 것이 투자라면, 지킬 것은 지키되 고집을 부리지 않고 다양한 이의 의견을 들으며 유연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복잡계 세상에서 어떤 법칙이 만물에 공통되게 적용되기를 바라는 것은 과도한 욕심이 아니었을까. 물론 모든 것에서 기회를 찾는 것도 욕심이니, 이런저런 규칙을 짜집기로 만드는 것도 지양해야겠다.
문득, Shopify의 기민함과 유연함이 떠오른다.
"Shopify의 모든 미션은 6주마다 검토됩니다. 그래서 토비, 글렌, 저는 한 방에 모여 회사의 모든 미션을 검토합니다. 따라서 회사의 어떤 미션도 최대 6주 동안 궤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변경이 필요하다면 바로 변경합니다. 대부분의 회사에서 몇 달, 몇 분기, 몇 년이 걸리는 일을 Shopify에서는 최대 6주 만에 끝낼 수 있습니다." (Source: 2023 Shopify Investor Day)
투자에 큰 도움을 주신 고수 분을 처음 뵈었을 때, ‘트레이딩과 인베스팅, 어떻게 둘 다 잘하시나요?’라고 물어봤었고 고수분은 ‘결국 다 같습니다.’라고 답해주셨다. 와닿지 않는 답변이었는데…
이제는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유연하게 사고하며 손익비를 잡는 것, 그러면서도 이 사고의 기저에는 단단한 원칙이 있는 것.
투자는 매일이 생사결의 연속이며, 불확실성 투성이라 두렵기도 하지만 난 이게 즐겁다. 세상은 원래 모순 투성이고, 이를 받아들이며 나아가야 한다.
(견고하지만) 유연하게. (기민하지만) 침착하게. (힘들어도) 럭키비키. 모순적인 말들이 아직도 회색 종이 같지만, 원래 확실한 건 없다. 아직 문장으로 잘 써내려지지 않은 게 이해도가 높지도 않으면서, 시장이 좋아서 젠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점인 것이 분명하다.
국내와 해외
국내와 해외를 균형있게 투자하고자 인풋을 넣다보니, 차이점이 명료해졌다. 주식이란 국내에서 증권에 가깝고, 해외에서는 투자에 가깝다. 국내는 외부적인 요인을 더 많이 고려해야 하고, 해외는 기업 그 자체에 대해서 고민이 더 필요하다.
시장 참여자가 불확실성을 인내하는 정도와 주주 환원율 그리고 산업 특성에 따라 이러한 차이가 만들어진다. 각 시장을 대하는 방법이 달라 가끔 머리가 터질 것 같으면서도, 근간은 변화에서 비롯되는 퀄리티나 업황이다. 심플하게 하자.
I used to be scared of uncertainty; now I get a high out of it
-Jensen Ackles-
한 끗 차이
이번 분기에 좋았던 점과 오답노트는 한 끗 차이에서 나왔다. 잘한 점은 기업의 선을 기민하게 지켜보며 좋은 트레이딩을 했다는 점. 못한 점은 예외적으로 잘하는 기업의 비중을 유지하며 끌고가지 못한 것.
뭐 사실, 기업 주가가 고점에 치달았을 때, 모두 매도를 누르고 나서 발생한 결과에 불과하다. 이후 주가가 올랐으면 오답노트이고 내렸으면 잘한 점이랄까. (주가의 노예?)
매도 이후 주가가 오른 케이스의 경우에는, 집요함이 모자랐음과 동시에 의사결정에 익숙치 않은 이가 그렇듯 침착하지 않고, 성급하게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외적인 기업이 얼마나 소중한지 잠깐 망각한 것 같기도 하고. 앞으로는 좋은 공을 강하게 치려는 노력을 해봐야겠다.
What이 아닌 Why
BZCF 님의 글. 인생도 투자도 ‘Why'가 핵심이다. 좋은 Why가 많이 있는 논리가 우수한 투자 아이디어가 아닐까.
과거 조선의 주가는 왜 안되었을까. 화장품 주가는 어떻게 빠졌는가. 왜 셀시어스는 팔지를 못할까. 왜 엔비디아를 벗어날 수 없을까. 왜 쉑쉑은 이제서야 캐나다에 들어갔을까.
동료의 중요성
주식 투자의 가장 좋은 점은 동료와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은 매물이 희소하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어서, 공유하기가 어렵지만 주식은 그렇지 않다.
개인적으로 잘되었던 케이스들은 홀로 골방에서 쳐박혀 있을 때가 아니라, 투자 동료들과 토의하면서 의견들을 첨예하게 쌓아갈 때 였다.
직장과 병행하기에는 벅찰 때가 있지만 투자 스터디를 통해 뛰어나신 동료 분들의 얘기를 귀담아 듣고 사고를 확장해나가고 있다. 앞으로는 나도 더 베풀고, 동료들의 얘기들도 더 귀담아 들으면서 시너지를 일으켜 좋은 트랙레코드를 만들어가고 싶다. 함께 좋은 성과를 내고 맛있는 걸 먹는 것만큼 좋은 순간이 어디있을까.
앞으로는,
앞으로 해외에서 하고자 하는 것은 빅테크 정리와 함께 헬스케어 고성장 기업 유니버스를 만들어두고 싶다. 기존 유니버스도 더 강건히 만들어두고.
국내의 경우 모든 섹터를 다 보면서 게임의 논리를 더욱 더 알아가고 싶다. 여기에 욕심을 내면 하드웨어 IT 쪽 기업 중 유망한 기업 한 두개를 온전히 이해해보는 것 정도. 나와 같은 무지랭이가 시장을 전망하는 것은 웃긴 일이지만, 남은 하반기는 보수적으로 나아갈 생각이다. 지금 잠깐 하락장이 무엇인지, 모두가 망각한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올해 내 반려자와 드디어 결혼하다는 점. 끊임없이 배우고 사고하는 것도 결국은 행복한 가정을 꾸리려고 하는 것이다. 투자에 잡아먹히지 말고, 더 잘해줘야겠다. 그런 사람이다.
처음 뉴스레터를 작성했을 때는 이직할 때 레퍼런스가 되지 않을까해서 시작했었다. 블로그는 호흡이 빨랐지만 뉴스레터는 그렇지 않아서 편하기도 했고. 그러다가 주식할 때 가장 행복해다는 걸 알게 되어 뉴스레터는 사모 이직보다는 주식 투자자분들을 만나기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작성했다. 만나서 ‘이러쿵 저러쿵’ 나에 대해 설명하는 것만큼 별로인게 없는데 뉴스레터나 블로그가 있으면 설명이 쉬웠다.
그리고 이제는 뉴스레터 덕분에, 분수에 넘치는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여러 스터디도 하면서 겹치는 종목도 많이 생겼고, 그렇기에 블로그, 텔레, 뉴스레터에 개별 종목을 언급하는게 많이 꺼려진다. 더이상 뉴스레터나 블로그를 작성하기에는 동기가 사라지고는 있지만, 정리하는데는 이 서브스택만한 것이 없기에 지금처럼 가끔씩 찾아오지 않을까 싶다.
과거에 뉴스레터 작성한다고 주말 이틀을 꼬박 쓴 적이 정말 많았는데, 다 쓰고 나서 평일에 바로 출근해도 행복했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지금도 공부만 하면서 지나가긴 하지만… 시간이 참 빠르다. 아직도 할 건 많지만, 여전히 재미있다. 정진!